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멤피스 그리즐리스 (문단 편집) === 멤피스로의 정착, [[파우 가솔]]-[[마이크 콘리]]의 시대 === 아무리 멤피스로 연고이전을 했다 해도 스몰 마켓이 빅 마켓이 되고, 없던 가치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이미 ABA가 존속했던 1970년에 뉴올리언스 버커니어스가 이사와서 '멤피스 프로스'로 출범하여 1972년에 '탐스', 1974년 '사운즈'로 각각 변경하며 뛰긴 했으나, 재정난 때문에 1975년 볼티모어로 연고이전했다. 그 팀도 볼티모어에 와서 시범경기밖에 못 뛰다가 리그 해체와 함께 사라졌다.] 여전히 멤피스는 매 연말마다 개최되는 리버티 볼(Liberty Bowl)[* 대학 미식축구부들은 정규시즌(12경기)에서 6승 이상을 거두면 볼 게임(Bowl Games) 초청 자격이 주어진다. 볼 게임은 여러 도시에서 개최되며 리버티 볼은 멤피스에서 개최되는 볼게임이다. [[FBS/Big-12]] 1개교와 [[FBS/SEC]] 1개교가 대결한다.]의 예처럼 [[대학풋볼]]의 인기가 우세한 탓에 마켓도 적은 편이고, 구단 가치도 NBA 전체 구단 중에서 뒤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다. 더 나아가 헤이즐리 구단주는 임기 12년 내내 경기 자체보다 선수들의 재계약에 신경을 써서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선수들이 멤피스에는 그래도 가기는 갔다만, 이때 팀은 멤피스 지역에서 마치 외부인처럼 대해졌다고 한다. 멤피스에 생긴 첫 메이저 스포츠 팀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반응이 실제로 좋지 않았다. 2002년에 헤이즐리 구단주는 '쇼타임 레이커스' 때 명단장 [[제리 웨스트]]와 노장감독 휴비 브라운까지 모셔와 팀 재건에 나섰는데, 그 성과 중 대표적인 인물이 1년 전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스페인 선수 [[파우 가솔]]이었다. 그의 성장으로 점차 팀이 강해지면서 2003/04 시즌에는 처음으로 50승을 넘겨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뤘고, 시즌 후에는 팀 컬러 및 로고를 변경했다. 다만 나갈 때마다 1라운드에서 0-4 식으로 털려서 문제였지만. 이처럼 절망적인 시기에 멤피스는 절박한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파우 가솔을 정점으로 한 체제는 2008년 1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1:4 트레이드를 통해 파우 가솔을 LA로 보내면서 막을 내렸다. 이 때 얻은 4명 중에서 팀에 보탬이 된 선수는 파우 가솔의 동생인 [[마크 가솔]] 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